자면서 듣기 좋은 성경이야기
출애굽기 3-4장 · 출애굽과 광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 출애굽기 3:12
미디안 광야. 뜨거운 해가 돌산을 달구는 이 땅에서, 모세는 오늘도 양 떼를 몰고 있었습니다. 나이 팔십. 손등에는 주름이 깊고, 눈빛에는 오래된 피로가 배어 있었죠. 한때 이 사람은 이집트 궁전에서 자랐습니다. 파라오의 손자로 불렸고, 히브리 동족을 위해 무언가 해보려 했어요. 하지만 그 꿈은 40년 전, 단 하루 만에 모래 속에 묻혔습니다. 살인. 도망. 그리고 긴 침묵. 지금 모세에게 남은 건 양 떼와, 잊고 싶은 기억뿐이었습니다. 혹시 이런 느낌 아시나요? '나는 이미 틀렸어. 다시는 안 돼.' 그 무게를 짊어진 채 모세는 오늘도 양을 몰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호렙 산기슭에서 모세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타오르고 있었어요. 광야에서 불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타고 있는데... 타지 않았습니다. 잎사귀 하나 줄어들지 않았어요. 불이 붙었는데 타지 않는다 — 이게 무슨 뜻일까요? 모세는 발을 멈췄습니다. 숨을 참았습니다. '가까이 가서 봐야겠다.' 그 순간, 불꽃 속에서 이름이 불렸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40년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 그를 그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신을 벗어라. 지금 네가 서 있는 땅이 거룩한 땅이다. 모세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얼굴을 가렸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셨죠.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의, 이삭의, 야곱의.' 그 말이 모세의 가슴을 쳤을 겁니다. 이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 백성의 신음을 들으셨고, 그 기도를 기억하셨어요. 그래서 찾아오셨습니다. '이제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이끌어내겠다.' 팔십 세 광야 양치기에게 떨어진 명령이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겠습니까?' 딱 다섯 글자였죠. 하지만 그 안에 40년의 상처가 담겨 있었습니다. 한때 나는 이집트를 구하려 했는데 실패했어. 동족을 도우려 했는데 결국 도망쳤어.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한 민족을 이끌 수 있어요? 그 질문, 이상하게 낯설지 않으시죠? '내가 그걸 어떻게 해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실패한 사람을 왜 하나님은 다시 부르시는가 — 그 답이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뭐라고 하셨을까요?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단 한 문장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증거를 주셨습니다.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고 하셨죠. 모세가 던지자 뱀이 됐습니다. 물러서려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어요. 꼬리를 잡아라. 꼬리를 잡으면 다칩니다. 세상의 상식과 정반대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손을 뻗었습니다. 그러자 다시 지팡이가 됐어요. 손을 품에 넣었다 꺼내니 문둥병이 생겼다가 사라졌습니다. 나일강 물이 피가 되는 이적까지. '이것으로 그들이 믿을 것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하나님이 먼저 도구를 준비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또 물러섰습니다. 이번엔 진짜 속마음을 꺼냈습니다. '주여, 나는 말을 잘 못하는 자입니다. 어제도, 그저께도, 예전부터도 그랬습니다.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합니다.' 저는 이 구절에서 항상 멈춥니다. 말 뒤에 숨은 진심이 있거든요. '그러니 저 말고 다른 사람을 보내세요.' 40년 동안 광야에서 혼자 양을 쳤던 사람. 아무도 그의 말을 기다려주지 않았던 사람. 그에게 수백만 명 앞에서 말하라고요?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 사람은 끝내 거절하려는 걸까요?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불탔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셨다'고 적습니다. 그런데 — 놀랍게도 — 하나님은 허락하셨습니다. '네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그가 말을 잘하느니라. 그가 네 입이 되고,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아까 그 질문 기억하시나요? 실패한 사람을 왜 하나님은 다시 부르시는가. 여기서 답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지 않으셨습니다. 두려워하고, 더듬고, 핑계 대는 모세를 부르셨어요. 당신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통로가 됩니다.
하지만 대가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으로 돌아가 장인 이드로에게 작별을 고해야 했습니다. 40년간 쌓아온 평온한 삶. 안전한 일상. 그 작은 세계를 내려놓아야 했어요.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을 나귀에 태웠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쥐었습니다. 이제 앞에는 이집트가 있었습니다. 그가 도망쳤던 곳. 살인의 기억이 살아있는 곳. 그 길이 두렵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모세는 이집트로 향했습니다. 팔십 세 양치기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어떤 자격도 없었습니다. 완벽한 말솜씨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가 있었어요.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약속.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 그것 하나로 그는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걸음이 역사를 바꿨습니다. 수백만 명이 자유를 얻게 될 이야기의 시작은, 광야에서 신발을 벗은 한 노인의 순종이었습니다.
불타는 떨기나무. 성경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입니다. 아까 그 질문 기억하시나요? 불이 붙었는데 타지 않는다 — 이게 무슨 뜻이냐고요. 신학자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본성을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소멸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의 어떤 고난도, 어떤 시간도 그분을 태울 수 없어요. 그리고 그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가장 낮은 곳, 가장 평범한 일상 한가운데서. 우리가 이 이야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능력을 보시지 않았습니다. 그의 과거도, 실패도, 말더듬도 장애물이 아니었어요. 중요한 건 단 하나였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는 약속. 오늘 감당하기 버거운 일 앞에 서 계신다면, 기억하세요. 하나님은 완벽한 도구가 아니라, 순종하는 그릇을 찾으십니다. 신발을 벗는 것은 '내가 하겠습니다'가 아닙니다. '당신이 하시면, 저도 가겠습니다'입니다.
주님, 저도 모세처럼 '내가 뭐라고'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연약함을 아시면서도 부르십니다. 오늘 그 부르심 앞에 신발을 벗을 용기를 주세요. 제 힘이 아니라 '함께하심'을 믿고 한 걸음 나아가게 하옵소서. 아멘.